그윈블레드 2021. 9. 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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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치를 봤어요.

 



양조위는 양조위 셨어요. 올해 나이 59세.. 상관없어요. 항상 그랬듯이 스크린 속의 양조위는 양조위 그대로이고 그건 마블 영화에서도 예외 없었습니다. 저는 마블 영화에 양조위가 나와봤자 결국 할리우드화 되겠지.. 이랬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세상에 맙소사.  평소 눈을 반짝이며 수줍게 웃으며 부끄러워서 몸 둘 바 모르겠다는 듯 말하는 아저씨는 항상 하던 대로  스크린 속에서 모든 서사를 장악하고 혼자 서사 자체가 되어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데... 그게 마블 영화에서도 똑같이 살아날 줄이야.  제가 그동안 양조위 씨를 너무 당연하게 보고 있었어요.  1962년생인데 무술연기 준비하며 어렵지 않으셨을까, 일대종사 때 하고는 또 다르다 서양놈들아 어르신 죽는다 막 이랬는데.. 그건 저의 쓸데없는 걱정이었고요. 언제나처럼 모든 동작에서 빛이 났습니다. 탁자를 아작 내는 장면 마저도요.  그리고 다시한번...양조위씨가 얼마나 공들여 연기하는 배우인지 느꼈고요.  찾아보니, 양조위가 연기한 웬우의 한자 이름이문무(文武) 였어요. 재색도 겸비했는데. 

 

양조위 씨는 인터뷰에서, 샹치의 아버지 '만다린' 웬우에게 인간적인 모습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했어요. 아니.. 그럼 '인간' 모습만 넣지 왜 모든 서사까지 다 잠식해서 '양조위와 양조위의 전설'을 만드시고 그래요 🥺  이렇게 되기까지  유가령 씨가 정말 정말 큰 일을 하셨습니다. 감독이 연락하는데 휴가기간이어서 일하는 거 말하기 싫어서 어영부영 뭉개는 양조위 씨에게 '전화 또 해봐!!' 하며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게 하셨다죠. 정말 큰일 하셨어요. 마블 영화에서도 양조위 씨의 숨 막히는 매력이 고스란히 살아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하셨습니다.  

 

 

 

유가령 씨 덕분에 이렇게 살다 보니 양조위 씨의 피규어를 보게 되는 날이 왔어요.

 

아무튼..

재밌게 잘 봤어요. 
아직 샹치 이야기의 처음이라서 빌드업하는 이야기가 길고 그 긴 이야기가 뭔가 쫀쫀하지 않고 어딘가 빈틈이 있어 보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지만, 아시아인 주인공의 이야기를 거대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즐겁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샹치의 동생인 샤링이 힘들게 살아온 인생을 짐작하며 같이 속상해하고, 샤링이 앞으로 꾸려나갈 새로운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는 점도 좋았고요.  특히 샤링은... 오빠를 만나기 전까지 얼마나 마음에서 천불이 솟았을까 싶었어요. 그건 말로  이루 다 할 수 없지요. 아버지를 다시 만나서도 하고 싶은 말 정말 많았을 텐데. 샤링의 새로운 인생이 매우 흥미로운 선택이긴 했지만.. 샤링이니까 선택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어요.  아콰피나도 그냥 소모품 개그 사이드킥이 아니라 샹치와  동등한 친구로 나오는 것도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샹치와 샤링의 이모가 샹치가 대련 내내 꽉 쥐고 있는 주먹을 펼쳐주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중에 샹치와 아버지 웬우가 싸울 때 샹치는 손을 펼치고 있는데 웬우는 내내 손바닥이 터질 듯이 주먹을 꽉 쥐고 있었지요. 

익숙한 중국 요괴들이 등장하는 것도 매우 보기 좋았어요. 그중에서 혼돈의 신 제강이 털이 복슬복슬한 귀여운 친구로 나와서 몹시 신났어요. 내가 아는 제강은 앞뒤가 엉덩이이고 다리가 여섯 개 달린 맨질맨질하고 이상하게 생긴 생물인데...

 

 

제강이에요.

 

 

모리스예요. 

 

아.. 이렇게 귀여울 수가.  제강과 교감하는 슬래터리가 모리스라고 이름을 붙여줘서 영화에서 내내 모리스라고 불렸어요. 산해경에 따르면, 제강은 춤과 노래를 즐긴다고 하는데, 혹시 모리스라는 이름은 뮤지컬 영화와 오페레타에서 춤과 노래와 연기 모두를 빛내며 활약했던 배우 모리스 슈발리에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 아닐까... 혼자 추측해봤어요. 슬래터리는 리버풀 출신 연극배우이니까 뭐든지 연기와 관련된 것으로 이름 짓지 않을까.. 했어요. 근데 찾아보니, 모리스의 이름은 Morris이고 모리스 슈발리에의 모리스는 Maurice네요. 그럼에도 모리스가 춤과 노래에 맞춰 즐거워하는 모습 보고 싶어요.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울까요. 

 

 

휴... 샹치는 다음 샹치 이야기에 양조위가 다시 나올 방법은 없는 걸까요. 말하는 고리 내지는 회상 장면으로 나오는 거 어떻게 안될까요. 어떻게.. 이런 빌런을 만들어놓고 떠날 수 있어...........

 

이상 주인공 이야기 없는 샹치 감상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