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tman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봤는데, 보길 잘한 것 같아요. 상영시간이 3시간이었지만 재밌게 잘 봤습니다.
하드보일드 한 그래픽 노블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이제 배트맨이 된 지 2년밖에 안된 브루스 웨인이 20년 동안 내내 크게 키워낸 '복수', '비탄', '불안'이 내내 무겁게 짓누르는 색감과 참 잘 어울렸어요. 무채색, 낮은 톤의 주홍빛 석양, 어두운 푸른색, 새카맣다는 말이 어울리는 검은색.... 이 영화에서 가장 눈부신 색상이 나오는 부분은, 배트맨이 신호 조명탄을 손에 쥐었을 때였던 것 같군요. 젊은 브루스 웨인의 외모가 풍기는 분위기도 매우 무거웠어요. 피부는 문자 그대로 유령처럼 새하얬고 눈빛이 유난히 이글이글 빛났어요. 눈 주변에 칠한 검은 크림을 지우지 않은 채 영상을 분석하는 장면에서 눈이 잘 안보이니까 마치 해골 같았습니다. 브루스가 사는 집도 무거운 분위기였지요. 유럽의 고딕 성당을 닮은 내부로 기억합니다. 높은 천장에 뾰족한 창문이 여기저기 자리 잡아 위압적이었으며 집을 구성한 석재에서 뿜는 싸늘함이 영상으로 느껴졌습니다.
음악이 꽤 훌륭했습니다. 캣우먼의 음악은 고전 스파이 영화 혹은 누아르 영화의 여주인공의 음악 같았어요. 살짝 우울하지만 세련되었어요. '고양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인간 셀리나 카일'에게 집중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배트맨의 음악은 이제까지의 배트맨 음악과 조금 다른 분위기였어요. 2년 차 배트맨에게 딱 맞는 음악이라고 할까요. 예고편에서도 등장한 너바나의 노래('Something in the way')가 영화 본편에서도 나오고, 이 노래의 베이스 라인을 활용해서 만들었나 생각이 든 배트맨의 테마곡이 배트맨이 천천히 등장할 때마다 배경에 깔렸습니다.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이 살짝 연상되기도 했어요. 그 곡은 장송행진곡이라고도 불리는 곡이죠. 살아서 움직이지만 내면은 20년 동안 죽어있는 젊은 브루스 웨인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브루스가 살아있게 하는데 '앞을 막는 것'(Something in the way)... 너바나의 노래를 선곡한 것은 탁월했습니다.
악당이 나오지만 악당과의 대결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오랜 상처 안에서 고뇌하며 성장한 인물이(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거기에 '깐데 또 까' 상황을 만나서 더블 환장쓰...) 그 상처를 굳이 봉합하려고 애쓰지 않고 상처는 그대로 놔둔 채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각성의 과정은 아주 느렸고, 찡했습니다. 어린 배트맨의 메인 빌런으로 리들러를 설정하고, 리들러가 왜 그렇게 인셀 머저리 빌런으로 성장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은 어린 배트맨이 지난 20년 동안 살아온 과정의 거울상 같았어요. 없이 자랐다고 해서 그렇게 자란 사람 모두가 다 잘못된 길로 가는 건 아니지.. 라는거.
왜 배트맨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에 3시간이나 할애한 것인가 궁금했는데, 3시간 동안 속도를 크게 내지 않으며 짚는 것을 보니까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요. 브루스 웨인- 배트맨의 이야기를 흔한 히어로 각성 영화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달까요. 사회문제를 꼬집는 부분도 신경 써서 잘 배치했고요.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를 대단히 사랑하는데, 더 배트맨은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에서 그려낸 고독, 우울, 불안을 젊은 브루스를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낸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여기에 내적인 성장까지. 로버트 패틴슨은 그런 젊은 브루스를 잘 연기했어요. 연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더 배트맨은 캐스팅된 배우들의 연기가 고르게 훌륭했습니다. 연기 잘한다고 평판이 좋은 배우들이 캐스팅되어가지고 서서히 진행하는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해 줬어요. 캣우먼으로 나온 조이 크래비츠의 연기도 아주 좋았어요.
흥미롭게 잘 봤어요.
3부작이라고 하지요.. 후속 편을 어서 보고 싶네요.
배리 키오건이 '그분'으로 나올 모양인데... 후속 편 어서 만들어주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