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 1984
2021년 새해 첫 영화로 원더우먼 1984를 봤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몹시 좋았습니다.
이 영화에 낭랑하게 흐르는 1980년대 미국의 낙관주의가 좋았고, 낙관적인 분위기 그대로 담긴 장면들도 참 좋았습니다. 옛날 원더우먼 드라마에서 느꼈던 것들이 군데군데 나온 것도 좋았어요. 그 당시 미국의 '쎈 미국!'을 외치던 정치사회분위기를 부드럽게 비꼬는 것도 좋았어요. 근데, 그런 미국의 모습이 그때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21세기에도 현재 진행형으로 목격했지요. 그 점에서 이 영화는 과거 소위 '쌍팔년도'의 감성과 영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현재를 투영하고 있습니다. 약간, 우화 같은 느낌이랄까요. 세상이 혼돈의 구렁텅이로 굴러들어갈때 진실과 사랑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맥스웰 로드의 다리에 진실의 올가미를 던져서 세상 사람들이 빌었던 소원의 진짜 모습과 로드가 발휘하려고 용쓰던 전능한 힘의 실체를 밝히는 모습이 절정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장면은... 장면 연출이 좀 아쉽게 나왔더라고요. 그냥 보면 원더우먼이 일장 연설하는 것처럼 나와버렸어요. 안타깝습니다. 이 원더우먼의 갑분교장선생님훈화말씀 때문에 맘에 안 든다는 후기가 꽤 많았어요.
그런 기쎈 분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원더우먼의 모습은 영웅적인 면모가 눈부시게 빛나는 전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 70년 가까이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온 사람이었고요, 진실된 마음과 사랑을 외치며 히어로서 한걸음 스스로 성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트레버가 다이애나에게 했던 말..."다이애나, 아주 쉬워요. 바람, 공기의 흐름을 읽고 느끼며 함께 흘러가는 거예요" 이 말 그대로 하늘로 두둥실 날아올라 번개를 타며 날아가는 모습에서 너무나 벅찼어요. 아.. 트레버.. 내게 이렇게나 많은 눈물을 선사한 남자 주인공은 당신이 처음이야. ㅠㅠ.
액션이 약하다는 이야기가 많던데, 저도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원더우먼의 액션을 몹시 사랑합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원더우먼의 막강한 전투력을 호쾌하게 보여줬습니다. 둠스데이가 내뿜는 광선을 방패와 팔찌로 막아낸 뒤, 함성을 내지르며 날아가 마치 웃음소리 같은 기합소리와 함께 둠스데이의 종아리를 삭삭 베어내는 원더우먼의 모습은.... 그야말로 쾌감에 쩔어붙어서 오그라들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원더우먼의 본질에 액션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원더우먼은 본질적으로 사랑과 영감을 바탕으로 주변을 돕는 영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원더우먼 1984는 배트맨 대 슈퍼맨, 원더우먼에 이어서 원더우먼이라는 영웅의 여러 모습 중 하나를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강력한 전사, 작은 것까지 아끼고 보듬는 영웅, 모두를 사랑과 진실로 아우르는 영웅의 모습. 가장 원더우먼다운 모습을 드러낸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시국에 어울리는 영화라고 생각하고요.
원더우먼 3편이 벌써부터 매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