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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아프지만 감상했어요/넷플릭스 위쳐

위쳐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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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감상문.

(스포 주의, 호의로 가득찬 감상 주의)

 

 

 

 

차곡차곡 쌓아가며 시리가 천천히 성장해가는 분위기가 많이 축소되어서 아쉬웠어요. 제작진이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보니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고 하다가 엘프의 피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열심히 쌓아올리는데에 조금 소홀해진것 같아요. 제작진이 하고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는 점이 참 아쉽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가 대부분이 제작진이 새롭게 이식한 이야기였는데.... 새로운 이야기와 원래 이야기가 잘 안 섞이는 부분이 군데군데 보일 때마다 대단히 안타까웠습니다. 위쳐 소설은 판타지 이야기뿐만 아니라 북부 왕국과 닐프가드 제국의 정치드라마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 종족의 삶이 다층적으로 그려지는 작품인데.. 이걸 8부작 미니시리즈 안에 다 담으려니까 또 삐그덕 삐그덕.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보기 좋은 판타지 드라마가 완성되었으나 위쳐 세계가 가진 독특한 색채는 희석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작진은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대신, 시리가 그동안 제대로 말 못 하고 가슴속 깊이 감춰놓은 슬픔과 고독,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번 시즌2에서 볼레스 메이어라는 존재를 통해 폭발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여요.  볼레스 메이어는 원작에 없는, 제작진이 창작한 존재. 10대의 해소되지 못한 마음의 응어리가 파괴적인 심상으로 나타나서 주변을 망가뜨리는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도 가끔 보던 것이라 새롭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한꺼번에 어마어마한 규모로 터진 시리의 능력이 앞으로 게롤트와 예니퍼가 시리를 보호할 당위성을 강력하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맘에 들었어요. 시즌3에서는 더욱 처절하게 보호하고 애쓰겠지요. 

보니까 이번 위쳐 시즌2의 최대 희생자인 에스켈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던데,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제작자 로렌 히스릭은 최근에 넷플릭스 위쳐 유튜브 채널에서 있었던 방송에서, 그분을 그짝낸 이유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였다고 말했습니다. 위쳐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였겠지요. 그걸 극단적으로 묘사한 게 에스켈과 관련된 장면인 것 같아요, 게롤트의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어지간한 추적은 다 따돌릴 수 있고, 안전하게 숨어서 지낼 수 있는 공간인 케어 모헨이었지만 이젠 세상이 변했으며, 케어 모헨도 안전하지 않다. 세상의 변화에 위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음알음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세상의 변화와 위쳐들의 세계는 결코 동떨어지지 않다는 이야기를 트리스가 소든 힐에서 겪은 참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길게 말하는 장면이 있던 것으로 기억해요. 너의 전쟁, 나의 전쟁 이런 구분은 없다는 이야기였는데... 이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위쳐 코엔이 소설 본편 마지막권에서 대단히 큰 결심을 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케어 모헨을 묘사한 장면이 좋았습니다. 실험실, 소품, 중앙홀 등의 디테일이 훌륭했다. 중앙홀을 쓸쓸하지 않게 각색한 것도 맘에 들었어요.  다양한 위쳐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불을 쬐며 술잔을 기울이고 밥을 먹고 지난 1년 동안 겪은 일을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모습... 같이 불 쬐며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그리고..베스미어의 초조함, 불안함, 분노를 보여준것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천하의 베스미어도 자식처럼 키우고 가르친 제자들이 한명 두명 목숨을 잃을때 그도 깊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며 아버지라는 점을 보여줘서 좋았습니다. 그 절박한 마음때문에 오래전에 스승 데글란이 내린 선택처럼 양날의 칼 같은 선택을 내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게임 위쳐 3부작과 마찬가지로 드라마 위쳐도 독자적인 세계를 다져가고 있어서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늑대의 악몽에서 이어지는 설정과 시간대를 게롤트와 베스미어의 대사에서 드러낸 것만 봐도 넷플릭스의 위쳐는 자신만의 길을 확고하게 정해놨다는 점을 알 수 있었고요. 게다가 앞으로 공개될 프리퀄 블러드 오리진과 연결되리라 짐작되는 부분이 시즌2에서 등장했는데... 그 부분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여전히 드라마 자체의 단점(헐거운 이야기, 극단적인 극적 효과를 선호하는 제작자의 취향, 각본가도 겸하는 제작자의 많이 부족한 필력... 등등..)이 있긴 하지만, 시즌1보다는 발전한 부분이 있고요,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역시 기대한 대로 매우 훌륭했습니다. 배우들이 하드캐리한 부분이 또 여기저기 있었는데, 다음 시즌에서는 제발 각본이 더 밀도 있게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시즌3을 또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