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영화관에서 재개봉한 화양연화를 보면서(드디어 이 영화를 큰 화면으로 보게 되었네! 지난 세월 모니터로만 보다가 드디어...그오오옭) 주모운이 자신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서 끄적끄적 쓴 단편소설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며 끄적끄적. 그리고 그 시절은 모운에게는 흩뿌려지는 꽃잎처럼 가냘프게 아름다웠겠거니. 약간의 유쾌한 기억과 말하지 못해 속이 타는 기억이 뒤범벅되어.. 띄엄띄엄 불현듯 생각나다가 왜곡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화내며 정리하는 그런 기억. 밖의 소음과 웅성거림 속에서도 그 순간만큼은 매우 애틋했을 그런 기억. 작은 소동극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한가닥 실을 붙잡고 바들바들 떠는 두 사람 주변은 와글와글거리고 시간은 흘러가고.. 그렇게.
조위 아저씨는 모운이 온순하고 점잖은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저는 모운이 마냥 온순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꽤나 재밌는 면이 많이 있는 사람이고, 짝에 대한 이해가 살짝 부족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어요. 여자 친구의 취향은 전혀 안 물어보고 말 안 했으니까 나랑 비슷하겠거니 짐작하며 맨날 야채샐러드를 사가던 중경삼림의 경찰 663이랑 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원래 감독이 의도한 이야기의 방향은 모운이 려진에게 복수하는 이야기였다고 했던가요. 폭력적인 방식으로 복수하고 려진을 버리는데, 금방 죄책감을 느낀다는 뭐 그런 이야기라고 들었습니다. 그 복수하는 모운의 이미지는 2046에서 실컷 나온 것 같네요. 조위 아저씨는 모운의 성격이 너무 밋밋하다고 느껴서 좀 나쁜 인간의 모습을 넣으면 어떨까 하고 감독이랑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더군요. 몇몇 장면에서 모운의 표정이 순간 싸늘하게 보일 때가 있었는데, 그게 아저씨가 의도한바였나 하며 문득 궁금해졌어요. 내 뇌절일 가능성이 더 크지만요.
재밌는 영화에요. 감상할 때마다 인상이 달라지는 영화인것도 재밌어요.
그리고 매번 감상할때마다 OST에서 좋아하는 곡이 바뀌었는데, 이번에는 저우쉬안이 부른 '화양적연화'에 좀 깊게 꽂혔습니다.
https://youtu.be/fQkZynSZ100
모운은 밥솥을 닦으며 려진은 차를 마시며 이제 다시는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생각에 잠긴 장면에서 흐르던 노래였지요.
.... 꽃다운 시절, 달 같던 생기, 얼음과 눈 같던 총기, 아름답던 삶, 다정하던 그대, 원만하던 가정. 갑자기 이 외딴섬이 자욱한 안개와 구름으로 덮였네....
하지만 뭣보다도 이번 영화관에서 볼 때 내게 가장 강렬했던것은...만옥님의 치파오 퍼레이드도, 아저씨와 만옥님의 차르르 흐르는 감정 연기도, 만옥님과 아저씨의 아름다운 용안도 아닌... 아저씨가 밥 먹으며 내는 소리였습니다.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그게 그렇게나 크게 들릴 줄은 전혀 몰랐어요. 집에서만 볼 때는 아 잘 먹네 하고 넘어갔는데 영화관에서 보니까 너무 웃겼어요. 쩝쩝쩌접 냠냠 달그락 냠냠 쩝쭙 후루루루루룩.....세상에. 영화관의 스피커는 확실히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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