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나온 지 5년이 훌쩍 넘어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게임이고 많은 분이 감상을 남겼지만...

하츠 오브 스톤은 위쳐3의 첫 번째 DLC였습니다. 폴란드의 오래된 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고 하네요.
제가 위쳐3을 좋아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게임입니다. 두 번째 DLC인 블러드 앤드 와인에 비해 분량이 대단히 짧았지만 호러, 서스펜스, 액션, 코미디, 드라마가 균형 있게 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게롤트의 썩은 개그와 춤도 볼 수 있었고요. 전체적으로 매우 어두운 내용이었고 시작부터 끝까지 소름 끼치는 분위기였어요. 처음에 의뢰받고 만난 거대 두꺼비부터 이 DLC는 험난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강하게 예고했지요. 그 일관성이 저는 너무너무 맘에 들었습니다.
물론 단점이 있습니다. 이 컷신인데요..

올기어드가 불사의 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컷신이 있어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저 장면을 보려면 매우 억지스러운 상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냥 한 가지 선택지로 해서 이 장면을 모두가 다 볼 수 있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걸.. 생각했어요.
하지만 단점보다 맘에 드는 부분이 더 많으면 전체를 다 좋아하는 저는, 저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하츠 오브 스톤을 무지 좋아합니다. 마침 하츠 오브 스톤을 막 즐겁게 하던 시기에 위쳐 단편 소설을 읽기 시작했었는데요, 플레이하는 내내 단편소설에서 게롤트가 어느 시절에 겪은 기이한 에피소드를 읽는 느낌이었어요. 위쳐이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환상적인 사건이라서요. CD프로젝트레드의 오리지널 스토리였으나 어쩐지 위쳐 단편소설에도 이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이 아니지만, 하츠 오브 스톤을 하면서 이 짧은 DLC에 CD프로젝트레드의 장점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되게 이질적인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위쳐 소설에 가장 가까운 위쳐 게임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이리스의 이야기는 하츠 오브 스톤의 이야기 중 백미라고 생각했습니다. 괴수가 등장하는 어두운 게임과 심리와 호러가 뒤섞인 공포, 이리스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빚어낸 공포 세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깊은 절망과 고독, 욕망, 그리고 끝없는 슬픔... 모든 것이 들어가 있었어요.
이리스의 영혼이 스스로 묶여있는 폰 에버렉 저택에서 플레이하며 겪은 모든 감정은 제 마음에도 고스란히 맺혀버렸어요. 그래서 이후 위쳐3을 통째로 반복해서 플레이할 때마다 폰 에버렉 저택은 가장 꺼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가고 싶지 않은 곳, 들어가서 그냥 바로 나오고 싶은 곳.. 그랬어요.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곳이었죠. 올기어드의 마지막 의뢰였으니까요. 저택에서 마지막으로 만나는 최종 보스도 참 신경이 많이 쓰였죠.
그래서 저는 폰 에버렉 저택에 갈 때마다, 가기 전에 게롤트를 제가 할 수 있는 한 한껏 꾸며줬습니다.
기왕 가서 공포를 느끼고 싶다면 분위기에 어울리게 꾸며주리... 하면서..

이런 모습

이런 모습

이런 모습으로 갔어요.
곰교단의 강화 단계 갑옷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까맣게 염색하니까 아주 그럴듯해 보였어요.
참, 저 새카만 안경은 하츠 오브 스톤 내에서 보르소디의 경매장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 안경이 참 맘에 들었어요. 안경 이상하다 웃기다고 말하는 분이 많았지만.. 저는 좋아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선글라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안경이더라고요.

위쳐 1과 연결되는 안경이었지요.
처음에는 게롤트가 왜 저렇게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안경을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경매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며 승부욕을 불태우느라 표정이 저런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 그래 게롤트.. 안경 꼭 사줄게' 하며 안경을 샀는데...
나중에 위쳐1의 도입부에서 아직 꼬꼬마 위쳐인 레오를 죽인 살인청부업자 '교수'가 착용한 안경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저 눈빛의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게롤트가 무서운 눈으로 노려볼만하지요.
'그렇게 유난 떨더니 안경만 남기고 떠났구나'.....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하츠 오브 스톤은 다른 위쳐 퀘스트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우리의 성실한 위쳐 게롤트가 고생 고생해서 일을 완수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이게 게롤트의 순수한 자유의지만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하츠 오브 스톤에는 위쳐 게임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으스스한 공포의 흑막이 등장하거든요. 이 흑막은 한 인간의 절박한 욕망 혹은 본성을 이용해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며 계약을 맺고 그들을 계약 속에 얽혀 들게 하고 계약이 완수되는 날 계약한 인간이 어떻게든 파괴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하츠 오브 스톤은 바로 이 흑막에게 놀아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놀아난 사람 중에 게롤트도 있었습니다. 게롤트가 신체적인 것보다는 뭐랄까... 심리적인 면에서 좀 고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요. 얼굴에 원치 않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고요. 일종의 약속의 표시였습니다. 일을 다 끝내야 낙인을 없애주겠다고 했어요.
낙인은 이렇게 생겼지요..
딕스트라의 목욕탕에서 두른 비브라늄 수건 이후로 두 번째로, 플레이하는 중에 알아서 상체가 벗겨진 채 싸우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좋아요.
아무튼..
그 흑막은 바로 이 사람 군터 오딤..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츠 오브 스톤에 파우스트적인 분위기를 잔뜩 제공한 일등 공신입니다. 고통의 원흉.
외모만 보면 힘이라고는 하나도 못쓸 것 같은 그저 평범한 상인처럼 생겼습니다. 스스로 '거울 장수'라고 소개하지요. 특징 없는 얼굴에 흔하게 길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카랑한 목소리, 볼품없는 옷차림새. 여정의 중간에 들른 여관에서 스쳐 지나가는 흔하디 흔한 상인의 모습이에요. 마치 모든 이야기를 다 술술 잘 들어주고 이해해줄 것 같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에 그를 만난 사람은 자연스럽게 설득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한 위험한 계약을 하게 됩니다. 대단히 유혹적이며 절대로 물릴 수 없는 계약. 물리고 싶어도 내 의지로 절대 끊을 수 없고 군터 오딤이 원하는 대로 결말을 맞이해야 하는 계약. 말장난에도 어찌나 능수능란하던지요. 게롤트도 군터 오딤의 말장난에 말려들어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어요.
군터 오딤은 위쳐3 게임 전체를 지배하고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의 존재감은 두 번째 DLC 블러드 앤드 와인의 메인 퀘스트의 한 꼭지에서도 대화 속에서 그리고 대화 뒤에 흐르는 배경음악에서 잠깐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배경음악 속에서 군터 오딤의 주제곡이 슬쩍 나왔을 때 느낀 소름이란. 이렇듯 물리적으로 등장하지 않아도 군터 오딤은 오싹한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의 테마 선율은 조금만 등장해도 몸이 으스스해졌어요.
이렇게.
어느 팬이 하츠 오브 스톤에서 등장하는 군터 오딤의 테마 선율만 모아서 편집한 영상을 만들었네요.
이렇게 이 선율은 하츠 오브 스톤 내내 등장합니다. 군터 오딤의 주제곡이며 하츠 오브 스톤의 주제곡입니다. 원래 가사가 붙은 노래예요. 게임이 막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교차로에서 아이들이 놀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왔는데요, 가사는 이랬지요.
His smile fair as Spring, as towards him he draws you
His tongue sharp and silvery, as he implores you
Your wishes he grants, as he swears to adore you
Gold, silver, jewels, he lays riches before you
Dues need be repaid, and he will come for you
All to reclaim, no smile to console you
He snare you with bonds, eyes glowin' afire
To gore and torment you till the stars expire
그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에게 다가와 유창한 언변으로 소원을 받아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눈앞에 펼쳐주지만 그는 반드시 당신을 다시 찾아와 그대에게 준 만큼 다시 받아간다.. 다 받아낼 때까지 그대를 고통스럽게 괴롭힌다..
게롤트는 저런 존재를 상대로 마지막에 일생 최대의 내기를 거는 어마어마한 용기를 뿜어냈습니다.
선택지가 있기 때문에 용기 따위 접고 그대로 끝낼 수 있지만, 용기를 선택했을 때.. 저는 게롤트에게 감동받았어요. '그를 살려 보내 줘. 그 빚은 내가 떠맡도록 하지..'라고 말하며 '내가 불가능한 일들을 잘 이뤄내는걸 직접 봤으니 잘 알 거 아냐'라고 굉장히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듯 선선히 말하는 모습부터 저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답니다. 처음에 할 때는 '아니 그럼 군터 오딤이랑 궨트를 해야 하는 거야? 난 반드시 지겠는걸' 했으나.. 다행히 궨트는 아니었어요. 이후로 하츠 오브 스톤을 세 번 더 하면서, 저는 항상 게롤트의 용기 선택지를 골랐습니다. 그것이 게롤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선택지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만약 소설의 게롤트에게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면 소설의 게롤트도 그 선택지를 고를 거라 생각했습니다.

몇 번을 반복해서 플레이를 해도 할 때마다 마치 새로 느끼는 것처럼 오소소 소름을 경험하는 게임이었어요.
그래서 제게는 블러드 앤드 와인보다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고요.
만약 새로운 위쳐 게임이 만들어진다면, 하츠 오브 스톤처럼 제작사에서 만든 오리지널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재기 넘치는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할 생각이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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